Skip directly to content

1900~1950

1928 페니실린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다


페니실린 발견자
알렉산더 플레밍

 

1928년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페니실리움(penicillium)에서 분비되는 곰팡이 액(mold juice)에 병원균을 죽이는 성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나 실제 의료 처치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플레밍의 발견은 단순한 실험으로 결론 지어졌습니다.

1941년 화이자의 존 데이븐포트(John Davenport)와 고든 크레그윌(Gorden Cragwall)이 페니실린의 전염병 치유 가능성과 관련 자료가 발표된 심포지움에 참가한 이후, 화이자는 3년 동안 회사의 모든 자원을 페니실린 제조에 쏟아 붓는 커다란 모험을 하게 됩니다.

당시 전쟁 구호로 인해 대량의 페니실린이 필요했던 미국 정부는 화이자 제조 공정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여러 업체에 화이자의 기술을 이용한 항생제 생산을 허가했습니다. 그러나 이 업체들은 생산공정과 품질 측면에서 화이자에 필적할 만한 제품을 생산해내지 못했습니다.

1944년 연합군과 함께 노르망디에 상륙한 페니실린의 90%는 화이자 제품이었고, 남은 전쟁 기간 동안에도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데 사용된 페니실린의 양 가운데 절반 이상이 화이자 제품이었습니다. 페니실린은 세균성 감염의 최초 치료제로, 화이자는 세계 인류사의 일대 전환점이 된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치료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전통

페니실린 개발 및 생산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이래, 화이자는 항감염성 약품의 발견과 개발, 판매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테라마이신(Terramycin) 및 지오펜(Geopen), 세포비드(Cefobid), 설페라존(Sulperazon), 유나신(Unasyn), 바이브라마이신(Vibramycin), 디푸루칸(Diflucan), 지스로맥스(Zithromax)는 혁신적인 화이자 제품의 자랑스런 전통을 잇는 제품들입니다. 전염성 질환이 다시 세계적 보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앞서 언급된 제품들의 성공은 항생제 발견과 개발 프로그램을 지속했던 화이자의 결단이 옳은 것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항생제 시대를 선도

회사 설립 후 처음 100년 동안 화이자는 자사 제품의 원료를 다른 회사에 대량으로 판매하였으나 1940년대 후반 새로운 항생 물질을 발견하면서 화이자 자체 브랜드를 개발했습니다.
화이자의 과학자들은 질병과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유기체를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전세계의 13만 5000개의 토양 샘플을 수집하고 2000만 번 이상의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세균에 대해 효과가 입증된 성분을 찾아 약품의 원료로 이용할 수 있는 흙을 발견했습니다. 화이자 과학자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발견되고 개발된 최초의 약품인 이것은 라틴어로 땅을 의미하는 테라(terra)를 써서 테라마이신(Terramycin)이라 명명 되었습니다.

1919

발효공법을 이용한 구연산 대량 생산에 성공, 유럽 감귤 생산업자에게만 의존하던 기존 생산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1924

창립 75주년을 맞아 306명의 직원과 함께 브룩클린 공장에서 기념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기념식은 화이자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남아 있는 행사입니다.

1928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 페니실린 곰팡이의 항생효과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의학 역사에 남는 획기적인 사건이자 화이자의 진로를 변화시킨 일대 사건의 시초입니다.

1936

발효할 필요 없이 아스크로브산과 비타민C를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일주일 내내 24시간 가동되는 제조 공장을 건립하는 등 화이자는 비타민 C 생산의 선도적인 입지를 확보합니다. 이러한 성공과 더불어 1938년 비타민 B-2, 리보플라빈을 생산하였으며 더 나아가 리보플라빈, 티아민, 니아신, 철을 포함한 복합제를 개발함으로써 1940년대 말 비타민 제조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1939

화이자의 당밀발효에 의한 구연산 제조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19년에 1파운드 당 1.25달러였던 구연산이 20센트로 급락하며 발효 기술의 선두 주자가 됐습니다.

1941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병사들의 치료를 목적으로 페니실린 대량 생산을 촉진하려는 미국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페니실린 생산 기업들 가운데 유일하게 발효기술을 활용한 페니실린을 생산합니다.

1942

6월2일, 델라웨어주에서 주식회사로 등록하고 최초로 24만주의 주식을 발행하면서 회사를 공시하였습니다.

1944

”창내탱크(deep-tank)” 발효법을 사용한 페니실린 대량 생산이 성공을 거두면서 “기적의 약”으로 불리는 페니실린 세계최대 생산업체로 거듭났습니다.

1946

코네티컷주 그로톤에 있는 일렉트릭 보트 빅토리 야드(Electric Boat Victory Yard) 를 매입, 세계최대의 구연산 발효공장을 건립했습니다.

1949

창립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1950

화이자 최초 개발 프로그램의 성과로 얻은 광범위 항생제인 테라마이신® (Terramycin®)이 화이자의 상표를 붙여 미국 내에서 최초의 제약품으로 판매됩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화이자는 외국 시장 진출을 시작했습니다.